울엄마 점남씨에게...
엄마 <<< 시장가서 아버지 하나 사와라 "
한살 차이나는 사촌동생과 서로 자랑꺼리 경쟁을 하다
"너는 아버지 있어 난 있다.."라는 말에 말문이 막혀
씩씩거리며 집으로 들어와 엄마 점남씨에게 던진 말이다.
"그래, 내가 돈 모아서 좋고 비싸게 아버지 사오마조금 기다려..."
나를 무끄러미 응시하시다가 던지신 엄마의 말이다.
엄마에 말에위로가 되어
얼마만 지나면 아버지 부재에 대한 불편함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때가 6살이었던 것으로....
여기까지가 종종 생생하게 기억되는 부분이다.
그리고도 몇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영원한 부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시장에서 사올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때의 엄마의 나이 만큼보다고
더 많은 나이를 먹은 중년이 되어버렸다.
서른 여섯 너무젊은 나이에
남자 그리고 남편의 부재는 점남씨에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가져다 주었을까..
오로지 엄마만을 처다보는 자식들 먹거리 해결에
아마도점남씨는 자신의 존재 가치나 여자임을 포기했었으리라...
따스함 보다는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라서 그렇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엄격하셨던양반
아이들이 버릇없어질랴 누군가 챙겨주는 음식들을 집앞에서 버리고 들어와 버리시는양반
늘 멕가이버 수준의 엄마를 보며
다른엄마들처럼 부드러움이나 자상함을 겸비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적이 있었다 .
지금은 끊으셨지만,
늘 담배를 피시는 엄마를 보며
신경전을 벌였던 철없던 젊은 날들,,,
예전 드라마 "아들과 딸"에나오는 어머니 보다도
더 심하게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시며차별을 하셨던양반
그렇게 세월속에 때론 엄마에게 모진 말들을 하며...아프게 했던 것들이 후회되기 까지는
30여년의 세월을 지나 40이 넘어서야 진실하게 그리고 솔찍하게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많은 세월이 지나
그렇게 당당하시고 옷 매무새, 발걸음 하나 대충 걷지 않는 엄마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지고
얼마전부터는 허리도 조금 굽으셨다.
아직도 젊은 날의 자존심이 조금은 남으셔서
지팡이 권유에 핀잔을 주며 챙피하게 어떻게 하냐고 굳이 사용을 마다 하신다.
직장일로 바쁘다는 나의 일정에,, 맞추어
어버이 날인 오늘 가지 못하고 어제 늦게 잠시 들러 한번 안아드리며
"엄마 사랑해요" 라고 했더니 지금은 익숙하셔서 "그래" 하신다.
그쉽고 좋은말을 난 왜그리 인색하게 사용하지 않았는지
특별한 날이래야 볼 수 있는 자식들 방문에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어제 직접 만들어 내어 놓으신 자식들이 좋아하는 도토리 묵과 메밀묵이었으리라...
오랜만에 먹어보는 엄마의 그 맛에...
마다하는 것을 기필코양념간장과 더불어 두 모를 쌓아주셔서 조금전에 벌써 한 모를 먹어 치웠다.
살아 있을 때 자주 보자는 엄마의 말이 자꾸 목구멍에 걸린다...
그저 살아계신 동안에
몸에 불편함 없이 편안히 지내시다 가능한 천천히가시는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오래전 먼저 가 계신 아버지가 수고했다고 하시며 점남씨를 반가이 맞아주실 것이다.
두분의 정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지만
그 동안 서로의 대한 부재의 소중함으로 마주하며 정다운 담소를 나누시리라...
그날이 가능한 천천히 오길 바라는 마음은
결국 나로부터 오는이기심이리다.
지금 지방에서 올라온 큰딸 내외와 둘재아들 내외와 맛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옛날 얘기들을 하고 계시겠지만..^^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 막내딸 올림- 2008.05.08 어버이 날 저녁에
잠실 대교를 지나며 택시안에서 폰카로 by photo h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