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기말과제)
<<들어가기 전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 니체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문구 하나를 적었다.
그럼으로 글에 생명력이 주어진 것은 아닐까. 어느 시대에도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심오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명료함을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대중들에게 자신이 심오하다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호함을 위해 노력한다.”
니체에 관련된 글을 보다가 우연히 본 문구인데 아주 공감이 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순간의 연속이고 순간의 연결이고 영원희귀라고 하는 것과 일치한다.
◈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앞세워 인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무엇을 깨닫게 하고 싶었을까? 무엇을 행하게 하고 싶었을까?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하나님이 구약에서 인간에게 이루지 못했던 부분을 예수를 앞세워 다시금 우리에게 하려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어떨까 싶다.
성경의 주제는 인간과 정신과 영이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중심이 있다.
그리고 나와 타인에 대한 행함과 실천이 있다.
니체의 주제는 인간과 정신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중심이 있다.
그리고 나의 행함에 대한 실천이 있다.
<<본론 >>
◈ 지금 여기에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부활한다면
그가 찾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려는 사람들인지 동행하며 만나고 이해해보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의 맥을 성경 밖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왜곡된다.
마찬가지로 짜라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짜라의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 해석해 보려고 노력해본다.
짜라가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힘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희귀에 관하여서는
3부 전체를 통해 다시 다루며 강조하고 반복한다. ※ 짜라(=차라투스트라 : 편의상 줄임말)
-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에서는 존재의 자각과 행위, 그리고 구제(구원)에 대해서 말한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이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이렇듯 영원히 자신에게 신실하다
매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은 굽어있다.”(P.361)
“그대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여, / 그대를 기다리는 저 밖으로 나가시라. / 저들에게서 노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노래 부르는 것이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에게 어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새로운 노래로 그대의 영혼을 치유하라. / 그대의 막중한 숙명을 견뎌낼 수 있도록 ! /
그대는 영원희귀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이제는 그것이 그대의 숙명인 것이다!”(P.365)
◈ 건강을 되찾은 자가 아닌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짜라는 존재의 매 순간 그리고 동일하지 않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오늘은 어제이고 그리고 미래인 것이다.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는 먼저 존재의 자각을 해야 한다. 아래 본문 ③에서 다시 설명하면 존재의 자각은 모든 것을 사유하는 데서 시작하며 이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은 연민하는 신이라 할지라도. 행위는 산모의 고통을 각오해야 하며 숙명을 통과하고 창조하는 자가 되어야 비로소 구제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제에 대해서는 아래 본문 ⑤에서 해석해주고 있다.
◈ 상담 사례 : 삶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내담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짜라를 찾아왔다.
짜라는 마주앉아 그를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 당신이 죽음과도 바꿔버린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 당신이 말하고 있는 삶의 가치는 누가 정해준 것인가?
- 당신은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해볼 수 있는가?
- 당신이 죽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희로애락을 준 적이 있는가?
- 【크나큰 동경에 대해서】에서는 완전한 자유 , 자유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 나의 영혼이여, 나 네게서 사소한 수치심과 구석진 덕을 닦아내고는 맨몸으로
태양의 눈길 앞에 나서도록 설득했다. / 오 나의 영혼이여, 나 너에게 창조된 것과
창조되지 않은 것에 대한 자유를 되돌려주었다.”(P.368)
◈ 짜라가 말하는 완전한 자유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아마도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어린아이가 아닌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완전한 자유란 아래 본문 ①에서 언급한 진리는 사랑하는 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아래 본문 ②에서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자각을 되묻고 있다, 인간은 내제된 자유는 망각한 체 자유를 찾아나서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자유는 안에도 밖에도 존재하는 것임을.. 자유정신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어찌 자유할 수 있는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고독한 자이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을 경멸할 줄 아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질문 : 니체를 포함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가 가능할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한 자유란 없다.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한 자유 자체를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 완전하여도 불안한 것이다. 인간은 감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순간을 타고
여기에서 저기로 머무는 순간 이동하며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 불안을 넘겨준다. 다만 자유 정신을 소유한 자는 순간의 자유, 순간의 완전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불안의 반대는 믿음이다. 믿음은 사랑에서 온다.
- 【춤에 붙인 또 다른 노래】에서는 삶의 순간들을 주사위 놀이를 통해 삶의 노래로 담을 수
있는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자, 휘감고 있는 자, 유혹하고 있는 자, 탐색하고 있는 자, 찾아내고 마는 자.
너, 위대한 여인이여, 그 누가 너를 미워하지 않으랴! 너 순진무구하며 참을성 없는 바람처럼 날렵한데다
티 없는 어린아이의 눈을 한 죄 많은 여인이여, 그 누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랴! (P.374) /
자정이 되어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너는 하나에서 열둘 사이 궁리를 하지.”(P.377)
◈ 삶의 순간들이 아래 본문 ⑦에서 다양하게 보이고 있다. 삶은 매 순간 순간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하루, 한달, 일년, 그렇게 열두 번을 지나 연결되는 것이다. 이 순간들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짜라는 주사위 놀이를 통해 연결해 보려고 한다. 정해진 것은 없다. 주어진 것은 순간뿐이다.
그러나 본문 ⑥에서처럼 중력의 악령이 주사위 놀이를 조롱하며 노래하는 자가 되기보다 숙명을
무겁게 지고 있는 낙타의 모습을 따라하도록 한다. 무거운 시계바늘이 어제와 같이 하나 둘, 셋,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밤은 내게 새로운 순간을 열어준다. 다시금 주사위를 하늘 위로 힘껏 던져본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벽이 동터오고 새 노래가 시작된다.
◈ 질문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사진 작가 김중만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욱 공감이 되었다.
평소에 그의 사진을 통해 새로운 사물을 보는 것이 매력이 있어 관심을 갖던 중 우연히 보게 된 프로그램에서 보통의 사람 김중만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본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유년시절 아프리카의 생활, 그리고 파리, 우연히 접하게 된 사진이 그에게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첫 번째 시련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추방 그리고 낮선 곳,, 절망 가운데 발견한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는 잡초의 생명력 그것은 새로운 극복의 도전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때 더군다나 그것이 절망이었을 때 생과 죽음의 줄타기를 한다. 두 번째 역시 그가 선택한 것인 아니었다. 다시 낮선 곳으로 추방 그곳에서 그는 절망의 맨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택은 죽음밖에 없는 것 같은 그렇게 고통스런 극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주사위를 어렵게 던졌고 사진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내었다. 그는 지금에서야 말한다.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과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김중만의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지금의 김중만을 더욱 김중만답게 만들게 된 것은 바로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
그렇다. 인생은 그렇게 희로애락이 어울러져 있는 것이다.
3부 마지막 장의 일곱 개의 봉은 삶에서 만나는 넘어야 할 봉우리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때론 깊은 심연의 바닥을 치고 힘의의 의지로 나와야 존재의 자각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위버멤쉬의 과정인 것이다.
- 【일곱 개의 봉인】에서는 다시금 힘의 의지와 위버멘쉬, 그리고 영원희귀의 주제를 가지고 일곱
개의 봉인을 하나 둘씩 지나며 춤과 웃음으로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아내며 행복한 섬
으로 향하는 짜라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같다.
“무거운 것 모두가 가볍게 되고, 신체 모두가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알파와 오메가라면. 진정,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알파이자 오메가렷다!”(P.384)
◈ 니체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삶에 대한 긍정적 철학임을 알 수 있다.
“니체의 따르면 생은 우리에게 직접 주어져 있는 유일한 현실로서 약동하는 힘이자, 풍요요 기쁨의 생이다. 자연에 대한 긍정이요 그 자체가 힘에의 의지이기도 하다. 유일한 현실인 한 그것은 자기 근원적이며, 자기목적적이까지 하다.즉 다른 어떤 수단이 될 수 없는 자립성과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는 바로 생 자체에 있을 수밖에 없다.”(정동호 해설편_P.54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본문 중에서≫
①【 시장터의 파리들에 대하여 】
너 진리를 사랑하는 자여, 이막무가내인 자들과 다그치고 있는 자들을 질투하지 마라! 지금까지 진리가 막무가내인 자의 팔에 매달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 깊은 샘물이 하는 체험은 하나같이 더디다. 무엇이 그 깊은 곳에 떨어졌는지를 알아내려면 오래 오래 기다려야 한다.(1부_P.85)
저들은 속 좁은 영혼으로나마 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저들에게 있어 너는 항상 미심쩍은 존재다! 요모조모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것은 하나같이 미심쩍은 것이다. 저들은 네가 겸비하고 있는 온갖 덕을 구실로 너를 응징한다. 저들이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은 너의 실수뿐이다. / 저들의 속 좁은 영혼은 “모든 위대한 존재가 문제”라고 생각한다.(1부_P.87)
②【 창조하는 자에 길에 대하여 】
너 네가 자유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듣고 싶은 것, 그것은 네가 네게 지워진 멍에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너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너 멍에에서 벗어 좋은 자인가? 예속이라는 짐을 던져버리면서 자신의 마지막가치까지 던져버린 자도 있을 터에.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지? 그것이 짜라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 너의 눈은 분명히 내게 말해주어야 한다. 무엇을 향한 자유지? 너는 네 자신에게 악과 선을 부여하고 너의 의지를 율법이라도 되 듯 네 위에 걸어둘 수 있느냐? 너는 네 자신에 대하여 판관이, 그리고 너의 율법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가?(1부_P.104)
고독한 자여, 너 네 자신의 이르는 길을 가고 있구나! / 고독한 자여, 너는 창조자의 길을 가고 있다. / 고독한 자여, 너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며, 그 때문에 너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그 같은 경멸을. / 형제여, 눈물로 간청하노니 너의 고독 속으로 물러서라. 나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창조하려 하며 그 때문에 파멸의 길을 가는 자를 사랑한다.(1부_P.107)
③【 행복한 섬에서 】
너희는 신을 사유할 수 있는가? 하지만 모든 것이 사람이 사유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너희에게 진리를 향한 의지를 의미하기를! 너희는 너희의 감각을 끝까지 사유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세계라고 불러온 것, 그것도 너희에 의해 먼저 창조되어야 한다. 너희의 이성, 너희의 이미지, 너희의 의지, 너희의 사랑이 세계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 너희의 행복을 위해, 깨친 자들이여! 깨친 자들이여! 이러한 희망 없이 어떻게 삶을 참고 견뎌내려는가?(2부_P.141)
창조하는 자 자신이 다시 태어날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산모가 되어야 하며 해산의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진정, 나 백 개나 되는 영혼을 가로질러 나의 길을 걸어왔으며 백 개나 되는 요람과 해산의 고통을 겪어가며 나의 길을 걸어왔다. 나 이미 허다한 작별을 경험하기도 했고, 그리하여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은 마지막 순간을 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의 창조적 의지, 나의 숙명은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2부_P.142)
④【 자기 극복에 대하여 】
너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사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근거 있는 불신에서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사유 가능한 것들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모두 너희에게 순응해야 하며 굴복해야 한다! 너희 의지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2부_P.190)
⑤【 구제에 대하여 】
지난날을 구제하고 일체의 “그랬었다”를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전환하는 것,
내게는 비로소 그것이 구제다!(2부_P.235)
의지가 끝내 자기 자신을 구제하지 않는 한, 의욕이 무욕으로 변하지 않는 한, 형제들이여, 나의 또한 광기의 이 터무니없는 노래를 알고 있으렷다! 나 너희에게 ‘의지는 창조하는 자’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함으로 나 너희로 하여금 이 터무니없는 노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2부_P.237)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침묵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말이 많은 사람에게 그렇다”(2부_P.238)
⑥【 중력의 악령에 대하여 】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나 이렇게 가르치는 바이다. 그렇다고 병든 자 병에 찌든 자, 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자애라는 것조차도 그런 자들에게는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나 가르치노니, 자기 자신을 건전하며 건강한 사랑으로써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자기 자신을 참고 견뎌 내가며 쓸데없이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3부_P.319)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밝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 자신에게 더없이 어렵다. 정신이 때때로 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하니 말이다. 중력의 악령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선이요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라면 이미 자기 자신을 이미 발견한 것이 된다. 그런 자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만인을 위한 선과 만인을 위한 악” 운운해가며 지껄여대는 두더지와 난쟁이를 침묵시킨다.(3부_P.321)
진정, 나 또한 기다리는 것을 배우기는 했다. 그것도 철저하게 그러나 단지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도약하는 법, 기어오르는 법과 춤추는 법을 배웠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 언젠가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날 수는 없는 일이다!(3부_P.322)
⑦【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에 대하여 】
“사람은 보다 선량해져야 하며 보다 사악해져야한다” 나 이렇게 가르치노라. 위버멘쉬의 최선을 위해서는 최악이란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은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그 죄를 짊어지는 것이 저 소인배들의 설교자로서는 훌륭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크나큰 죄를 나의 크나큰 위안으로 삼아 즐기는 바이다.(4부_P.473)
힘에 부치는 것은 아예 바라지도 말라.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고약한 속임수가 있게 마련이다.(4부_P.475)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그리하도록 하라! 실려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할 일이며, 낯선 사람의 등과 머리에는 올라타지도 말일이다. 그런데 그대 말을 타고 올라오지 않았는가? 이제 그대의 목표를 향하여 서둘러 말을 몰고 있는가? 좋다 나의 벗이여! 보아하니 그대의 마비된 바로 또한 함께 말을 타고 있구나!
보다 지체 높은 인간이여, 그대가 목표에 이르러 말에서 뛰어내릴 때, 그대가 바로 그대의 높이에 걸려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4부_P.477)
능력 이상으로 도덕적이고자 하지 마라! 그리고 될 법하지 될 법하지 않은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지도 말라!(4부_P.478)
높은 종에 속하면 속할수록 성공하는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 모두는 실패하지 않았는가? 용기를 잃지 말라, 그게 무슨 문제라고!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마땅한 방식으로 그대 자신들을 비웃어주는 법을 익히도록 하라!(4부_P.480)
그 자신은 사랑이란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해보았더라면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사랑은 사랑을 갈망하지 않느니, 그것은 그 이상을 갈망한다.(4부_P.482)
행복한 상태에서조차 무거운 몸을 하고 있는 짐승들이 있다. / 불행으로 인하여 멍청해지는 것보다야 행복으로 인하여 멍청해지는 것이, 그리고 절름거리며 걷는 것보다는 볼품없게나마 춤을 추고 것이 그래도 낫다. 그러나 나의 지혜를 배워라. 더없이 고약한 것조차 두 개의 좋은 이면을 갖고 있다는. 더없이 고약한 것조차 춤추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다리를 갖고 있다는. 그렇다면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여, 반듯한 다리로 서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4부_P.484)
위버멘쉬에 또 다른 이야기
낙타, 나귀 -> 성실함과 헌신 /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니오 하지 않음
스스로의 삶에 가혹한 고문을 하고 있다고 보며 노예적인 삶이라고 비판
사자 -> 낙타와는 반대로 남의 말을 듣지 않음 / 자유를 열망하는 동물
무엇이든 명령을 하면 거부의사가 분명하며 어떠한 주인도 섬기지 않지
부정하는 법은 아는데 긍정하는 법은 모르는 사자
그래서 얼굴에 고민과 고통의 흔적이 있는 것이지
삶을 긍정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춤을 추거나 웃을 수 없는 것이지
어린아이 ->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놀이와 재미에 집중하는 어린아이
해야만 하는 것에서 자유로운 비도적적 존재
◈ 상담 사례 : 원가족에서 분화되지 못한 의존적 자아가 상담을 받고자 짜라를 찾아왔다.
짜라는 말한다.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다시 어린아이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니체가 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미학적 태도 ,용기 ,정중함, 깊이 ,이기주의 ,풍부함, 운명론, 여성적인 것, 우정, 책임감, 관대함
견고함, 건강, 정직, 고결함, 정의, 잘 노는 것, 현존, 자부심, 스타일, 고독, 강함, 절제
◈ 상담 사례 :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성공한 어떤 이가 어느날 짜라를 찾아왔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것이 전부인가,나를 찾고 싶습니다.
짜라는 말한다. 최고의 덕은 베푸는 덕이다, 그러나 만족할만한 덕이어야 한다.라고
그러나 , 위버멘쉬는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하나. 각자 스스로 기꺼이 몰락하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해 나아갈 것
둘. 그리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지의 삶에 충실할 것
셋. 힘에의 의지, 그 자체가 될 것
넷. 편협한 이성을 넘어 육체와 정신을 더 높은 단계로 고양하는 신체를 가질 것
다섯. 절대적 도덕, 즉 선과 악을 넘어서는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
여섯. 앞에서 말한 자기 극복의 과정을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놀이하듯 즐길 것
일곱. 결국 이 모든 짜라의 충고는 ‘삶에 대한 사랑’임을 명심할 것
◈ 많은 상담자들은 자신이 문제의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류가 있다.
내담자가 문제의 해결에 주체이며 중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단, 상담자는 그것을 도와주고 촉진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결론에 붙이며 >>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 볼 것인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머릿속은 유리에 성애가 서려 밖을 내다볼 수 없는 듯한 답답함.
그을 삼켜보려 하였으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입안에서 뱅뱅 남아돌았던 느낌.
그 속에 들어가 허비적대며 그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이만큼 서서 저쪽을 구경하기도 해보았다.
그러기를 몇 달 이제야 그의 글이 의미로 조금씩 다가오며 친근감까지 전한다.
사귀어보아야 안다. 이것은 인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무신론자였던 나는 어느 날 어찌할 수 없음에 닿았다.
나의 의지는 나의 정신은 모두 허상이었다.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자유함을 얻었다. 그것은 믿음에서 오는 자유함이라.
믿음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니체 그는 언제 어찌할 수 없음에 닿았을까?
아마도 아버지가 어느 날 죽고 그 다음해에 형제가 죽고
그때가 5살이었으니 그는 그 슬픔의 정확한 의미도 모른 체 안으로 삼켜버렸을 것이다.
그때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돌아서는 작은 씨앗을 심어놓았을지 모른다.
아닌 허락이 된다면 그 스스로가 하나님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고 있는 실존
그는 죽었고 그 뒤에도 사람은 태어나고 그리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고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오늘도 어느 구석진 다락방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새벽 기도를 올리는 목자가 있다는 것을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조금이라도 인정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알파와 오메가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원형 ‘가족’
“가족이란 말은 곧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서로 돕고 격려하기로 결단하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릭웨렌의 더불어 삶 중에서-
‘가족’ 이것을 짜라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만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릭웨렌의 더불어 삶 중에서-
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딕슨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잇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사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 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 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관련 공부하는 분들과 정보공유하려고 원본 파일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