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의 경제노트

아리스토텔레스와 좋은 삶을 위한 충분함 [예병일의 경제노트]

허브향처럼 2013. 8. 23. 11:53

           아리스토텔레스와 좋은 삶을 위한 충분함  

 

어떤 마을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의 비유를 들어 생각해보자. 도중에 그들은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계속 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오로지 함께 걸어가는 옆 사람보다 앞서겠다는 목표만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모든 내재적인 목적들이 소멸하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남는다. 남보다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자리 싸움이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꼭 있어야 할 곳이 없다면 남보다 앞서는 게 최선이 된다. (149p)
 
로버트 스키델스키 &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박종현 감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중에서 (부키)

 

최근 KBS의 '인간극장'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마이크로네시아에서 원주민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한국인 남자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더군요. 곳곳에 있는 과일열매와 더운 날씨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어서 그런가요, 그 곳에서는 뭐든 나누려는 생각이 일반적이고 가장 심한 비난이 '욕심쟁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자란 그 남자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일 겁니다.
 
이 책의 저자는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삶'(good life)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좋은 삶' 같은 목표가 소멸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 '누구만큼'이나 '누구보다 더 많이'라는 상대적인 목표만이 남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목표는 저자의 말대로 무한히 계속 멀어져갈 겁니다. '좋은 삶'과는 별 관계 없는 '자리싸움'(positional struggle)에만 매달려 지내기 쉽게 되겠지요.
 
'충분함'(enoughness)이라는 단어도 의미가 많이 바뀐 듯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으로는 '좋은 삶을 위한 충분함'이지만, 요즘에는 '욕구를 충복시키기에 충분함'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위한 충분함'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하며 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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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에 글을 읽으니,

요즘 제가 겪고 있는 것과 맥락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넓은 곳에서 3분에 1정도 줄어든 수준의 공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넓은 곳에서 살 때는 그 편리성을 충분히 느끼고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남아도는 공간에 대한 무관심으로.. 무의미하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하지 않은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무의미"

 

이곳에 와보니 작은 공간도 의미있게 귀하게 사용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편함이 무의미했던 것들을 의미있는 것들로 만드는구나 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부족함이 불편함으로 자리잡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아집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정리가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