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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_아무도 모른다를 읽고 올라온 기억에 조각


최규석님의 대한민국 원주민 - 아무도 모른다를 읽고 올라온 기억에 조각

http://h21.hani.co.kr/section-021143000/2006/06/021143000200606140614017.html


어린 눈에도 언니네 집 형편은 그리 넉넉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어떻게 내가 언니와 형부집에 맡겨져 살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침이면 언니와 형부는

두살정도된 조카와 푸대자루 몇개, 점심에 먹을 것들을
리어커에 싣고서 동네 야산으로 향한다.


당시 기억으론 싸리 가지 열매을 푸대에 담아오면 그것이 돈이 되었던 것 같다.

언니는 내게 조카를 당부하며 리어커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고는
푸대자루를 챙겨 형부와 내 눈에서 점차 멀어진다..

리어커 안에서 썍썍 자고 있는 조카를 지켜보다
지루해진 난 어느새 주변의 신기한 것들을 따라 조금씩 리어카와 멀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지났을까 언니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째 이를... 어휴.. 뱀이라도 물리면 어쩔려고..
이모야~~ 조카를 좀 보라니까...저 철딱서니..
기울어진 리어카... 풀섶 바다을 엉금 엉금 기고 있는 울 조카..
그래도 언니에게 심하게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어느날은 형부 목소리가 잠속에 들려 눈을 떠 보니 마당에 쌓아 놓았던 벼짚속이었다.
게스츠래하며 나오는 날 보고 형부는 어이없어 웃음을 날린다.
처제 찾는라고 동네를 몇바퀴 돌았구만..

동내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다 그만.. 너무 꼭꼭 숨어버렸나보다..

아침에는 마당에도 나오기 싫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집에 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친구들이 나와 똑같이 느껴지고 그들과 놀 수 있는 오후가 좋았다.

어느날인가 언니는 밥상을 펴 놓고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우리가 학교 포스터를 부탁하면 종종 보았던 모습을
언니가 시집을 간 후 처음으로 보았다.


맞아 울 언니 그림을 참 잘 그렸었는데..
오빠와 내 담임 선생님이 학교 포스터를 부탁하곤해서 우쭐했던 적이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도 반죽을 편편히 펼쳐 그림을 그리다 지우곤 했었다.

커다한 앨범 크기만한 노트에 색갈있는 연필로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개울가에 서 있는 기생을 그리고 있었다.
어느날은 머슴이 담장안에서 뭔가를 하는 이쁜 여인네를 훔쳐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린 눈에도 그림속 여인의 뭔가를 생각하는 눈빛, 기생의 틀어올린 머리카라,

살포시 매어있는 옷고름, 등..영화관에서그리고친구집TV속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그림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 표현이 참 섬세하다 싶었었다....

그렇게 한장 한장을,,, 한권의 책으로..

그런데 어느날 군복입은 아저씨가 가방에서 먹을 것을 많이 꺼내놓고
언니랑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허리를 구부려 절을 몇번을 반복해서 하곤

그 그림책을 가방에 넣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론 언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한참이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에 입사를 하려고 하니 10년이나 많은 나이가 문제다..
그때 생각을 하며 언니가 초등학교 2학년 중퇴인 나를 다시 초등학교만 다니게 했어도

난 훨씬 수월한 내가원하는 진로의 길을 선택해 가고 있었을텐데....라고

그리고 또 한참을 지나
그때 생각을 하면 언니에게 미안함 마음과 고마움이 든다.. 참 힘들었겠구나 하고..

"시험은 보아서 뭘하니" 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서도
경기여중을 붙어서 ... 한학기를 어렵사리 다녔다는 언니
연필과 노트가 없어 옆에 짝에게 빌려 공부하곤 했던 언니..
사실을 연필과 노트 살 돈을 바로 밑에 동생 큰 오빠가 돈을 달라고 하자
언니 준 것을 다시 달라고 해서 큰 오빠에게 줘벼렸다는 것이다.

"큰언니"
이것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담아야 하는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가끔은 언니가 엄마보다 훨씬 엄마같다고 느끼곤했다.

엄마가 언니의 마음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얼마전 처음으로 언니에 소리나는 울음을 들었다.
돌아가신 형부에 대한 애절함인지 아님 그동안 쌓아놓았던 자신의 대한 안쓰러움인지..
"울 언니 씩씩하게 잘 우네.." 등어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훌쩍 나이를 먹어가는 막내동생의 작은 품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