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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me hkkim

故 박경리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박경리 선생님의 생전의 모습>>

사람은 누구나 어느 세월에 태어나고

그리고

언제가는 그 어느 세월의 삶을 끝으로 죽게 마련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던 고인은 말은

왠지 가슴속으로 스믈 스믈 스며들어 꿈틀거린다.

인생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그것을 만나고 보내는 것이 얼마나다른가 싶다

토지에 주인공 서희처럼 여인으로서는 삶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소설가로서의 선생님의 공명심은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박경리 선생님께

오늘

선생님의 기사를 접하면서 새롭게 인생에 대해서 다시한번 조망해 보게 됩니다.

선생님의 인생에서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다가오는 일들이 많았지 않나 싶습니다.

"삶의 많은 굴곡이 없었더라면 나의 작품들이 완성될 수 있었겠냐" 는 선생님의 말씀은

제게 위로와 용기와 그리고 희망을 가져다 줍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작품속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살아가는 인생의 방향을 이야기해 주신 분입니다.

미래에

선생님의 나이와 제 나이가 비슷해져 있을 때,,,

선생님처럼 그렇게 당당한 모습의 노년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전국 여행중에 제 기억에 오래 남은 곳이 있다면 바로 "통영"입니다.

그중에도 남방산 공원에서 바라본 항구의 모습입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언덕 중턱쯤에 울타리를 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저녁을 짓고

탯마루에 걸터앉아 언덕 초입에 들어서는 그의 모습을 기다리는 일상으로

노년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

오늘 기사를 접하고 선생님이 고향이 통영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살아 생전에 한번 찾아뵐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

선생님 아쉬워하시지 않으시겠지요 ....

가신 곳에 평화로 외로워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주님이 주신 평화로운 그곳에서 선생님을 꼭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 김혜경 올림 - 2008.5.6

- 기사 내용 일부 발췌 -

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95년 5부작으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토지’는 방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7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학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토지’이다. 생전에 박씨가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듯 그의 작품에서 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본능 이상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토지’의 주인공 서희는 이 존엄성을 지키려는 가장 강한 의지의 인물로 등장한다. 따라서 그의 문학에 있어서 존엄성의 문제는 다른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 및 권력과 집단에 대한 비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할 때에 한(恨)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한을 풀어가는 과정이 곧 박경리 문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토지’라는 민족어의 대서사를 끝내고 강원도 원주에 칩거해온 그는 지난 2003년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중도 하차하긴 했지만 올 들어서도 시 3편을 월간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올초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사를 받기 위해 상경한 그는 본인의 몸보다 한반도의 생태계를 더 걱정했다. 그는 당시 “저도 한때 민족주의자였지만, 넓게 보면 민족주의는 지구촌에서 지역이기주의일 수도 있다”고 전제,“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며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작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굴곡 많고 험난한 일생이였다. 출생은 불행했다.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잠재했던 불행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버지는 열네 살 때에 네 살 연상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한 결혼이나, 둘 사이의 애정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아버지는 자주 유랑 생활을 했고, 또 이곳저곳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니까 박경리는 아버지는 있으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셈이다. 박경리 자신도 출생이 불합리했다며 이렇게 표현했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어머니에 대하여 타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적의에 찬 감정으로 일관했다. 어찌하여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게 미워한 여인에게 나를 낳게 했는가 싶다.”

지난 4월 월간 현대문학에 발표한 시 3편 중 ‘어머니’라는 시는 매우 개인적인 사연을 담고 있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사별 후 삼십여 년/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는 꿈을 스스로 ‘불효막심의 형벌’이라고 표현한 지극정성의 효심이야말로 한 줌 흙으로 돌아가기 전, 그가 자신에게 뼈와 살을 준 어머니를 향한 마지막 사모곡이었다. 한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답게 그는 어머니가 꾸었다는 푸른 용의 태몽처럼 한 마리 용이 되어 지상을 박차고 올라갔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날 문득 하늘의 구름이 이상한 형태를 띠며 흘러가고 있을 때 박경리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리게 될 지 모른다.

박경리가 있기에 우리 민족어는 오십촉 짜리 전구에서 무궁한 광명의 햇살로 확장되었듯, 한국문학사는 이제 박경리 이후의 문학과 이전의 문학으로 구획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동녘의 딸 박경리여, 부디 고이 잠드시길!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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